2026.03.25 17:20
산수유가 피었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 나오다가 우연히 눈길이 닿은 곳에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날마다 지나는 골목이건만 어제는 꽃을 보지 못했는데 간밤에 꽃을 피운 것일까. 볕바른 담장 가에 까치발로 서서 핸드폰으로 산수유꽃 사진을 찍으며 내가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밤새 꽃이 피어난 거라고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의 말처럼 꽃은 제 안이 뜨거워져야 핀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꽃은 핀다. 산수유가 핀 걸 보니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산수유 가지에 꽃망울을 터뜨린 봄볕의 따사2026.03.18 12:57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1970년대 가수 박인희가 부른 ‘봄이 오는 길’의 일부다. 봄이 시작될 무렵이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중 하나인데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봄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인지, 우리가 봄을 찾아 나서는 것인지 가늠이 안 돼 고개가 갸웃거려지곤 한다. 야생화를 좋아하다 보니 겨울빛이 사라지기도 전에 일찍 피어난 복수초나 바람꽃 등을 찾아 잔설에 덮인 계곡을 헤매고 다니는 내게 봄은 늘 찾아 나서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찾아 나서든, 절로 찾아오든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높은 산엔 희끗희끗 눈이 남아있고 꽃샘바2026.03.11 14:18
철원은 내게 특별한 곳이다. 고향 포천과 잇닿아 있는 데다 군 생활 3년을 보낸 곳이라 익숙하나 마냥 친근할 수 없는 가깝고도 먼 고장이다. 직탕폭포, 승일교, 고석정, 순담계곡, 와수리, 육단리, 매월동 등 군복을 입고 있던 3년 동안 철원의 산야를 발바닥 아프게 돌아다녔다. 오죽하면 제대하면 철원 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다짐했을까. 하지만 시간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햇볕 속에 된장 익어가듯 고통마저도 세월을 두고 삭히면 힘들었던 기억은 흐려지고 추억이란 당의에 싸여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시간의 물살에 씻긴 추억들은 그리움의 음표를 달고 다시 나의 소매를 그곳으로 슬쩍 끌어당긴다. 사회에 나2026.03.04 13:17
모처럼 시간을 내어 포천의 자랑인 직두리 부부송(夫婦松)을 만나러 갔다. 차를 타고 가며 바라보는 산빛이 한결 밝아진 듯하다. 우수가 지나면서 나무들이 부지런히 물을 길어 올린 모양이다. 겨우내 칙칙하던 솔잎에도 생기가 돈다. 고향 친구들로부터 부부송에 관한 이야기는 진즉에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부부송을 만나러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무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인 소나무는 암수딴그루인 은행나무와 달리 자웅동주(암수한그루)라서 암수 구분이 없다. 그러니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천연기념물 제460호로 지정되어 '부부송'이란 이름을 얻은 나무2026.02.25 13:23
우수(雨水) 지나니 개울물 소리가 한결 명랑해졌다. 입춘이 마음에 봄을 세우는 시기라면 우수는 봄기운이 물처럼 몸을 흐르기 시작하는 때라 할 수 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계곡물도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하고, 선잠을 깬 버들강아지도 하나둘씩 고개를 내미는 것도 우수 무렵이다. 복수초를 보기 위해 홍릉수목원에 다녀왔다. 홍릉수목원에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입춘이 막 지났을 때였다. 그런데도 우수가 지나서야 뒤늦게 찾아간 것은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이었지만, 복수초는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고 황금잔 같은 노란 꽃잎을 활짝 펼치고 반겨주었다. 복수초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망울을2026.02.18 19:25
마음속에 봄을 들이던 입춘도 지나고 남녘에선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도 간간이 날아오는데 내가 사는 이곳엔 여전히 겨울이 깊다. 산책길에 꽃나무 가지에 눈길을 주어봐도 어디에도 봄빛이 스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가로변의 벚나무들도 여전히 겨울잠에 취해 있는 듯 물을 길어 올리는 기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좀 더 일찍 꽃을 볼 욕심으로 꽃나무 가지를 꺾어 화병에 꽂을까 생각하며 개나리 울타리를 서성이다가 꽃 피지 않는 나무라도 해거리 중일지 모르니 함부로 꺾지 말라던 아버지 말씀이 생각나서 빈손으로 돌아섰다. 봄을 생각하면 까닭도 없이 자꾸만 달뜨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엔 시만 한 것도 없다. “꽃으로2026.02.11 13:20
살갗을 에는 바람이 맵차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속담이 헛말이 아니듯 봄의 문턱이라는 입춘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한파에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다. 오전 내내 집안에 들어앉아 있다가 콧바람이라도 쐴 생각으로 볕 좋은 오후에 천변 산책에 나섰다. 솜털 외투로 꽁꽁 싸맨 백목련 꽃눈이나 담장의 개나리 가지를 살펴봐도 봄의 기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마 볕바른 양지쪽 마른 풀 사이로 겨울을 잘 견딘 로제트 식물들이 푸른 빛을 찾아가고, 흐르는 물속에 초록 기운을 머금고 있는 한 뼘쯤 자라난 물풀들이 봄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방류구의2026.02.04 13:38
아침 산책길에 흰 눈에 반쯤 덮인 남천의 빨간 열매가 눈을 찔러왔다. 남아시아와 중국이 원산지인 남천은 상록관목이다. 한겨울에도 선홍색의 열매를 달고 있어 ‘겨울 정원의 보석’으로 불린다. 예로부터 화재나 액운을 막아준다고 여겨 집 정원이나 사찰 주변에 많이 심어온 나무다. 입춘을 코앞에 두고 밤새 눈이 내렸다. 눈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가 우연히 남천 열매를 보았으니 새봄엔 왠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봄은 아직 멀기만 하다. 해마다 입춘이 되면 사람들은 건강과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길 기원하는 입춘첩을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붙인다. 입춘첩을 붙이는 것은 우리 고2026.01.28 13:36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듯하다. 지구 온난화로 한겨울에도 좀처럼 빙점 아래로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따뜻한 겨울에 익숙해졌던 몸이 혹한의 추위 앞에서 잔뜩 움츠러들었다. 동장군의 위세가 드세긴 해도 마냥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바람도 쐴 겸 포천의 화적연을 찾았다. 국도를 벗어나 화적연을 찾아가는 도로는 반쯤은 채 녹지 않은 눈에 덮여 있었다. 화적연(禾積淵)은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휘돌아 나가며 연못처럼 보이는 곳에 볏단을 쌓아놓은 노적가리 형상의 바위가 솟아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말로는 ‘볏가리소’다. 피서객과 캠핑족들이 붐비는 여름과 달리 강과 어우러져 고고한 풍광을 간직한 눈 덮인2026.01.21 13:39
나이 한 살 보탠 티를 내는 것일까. 달력 한 장 바꾸어 걸었을 뿐인데 겨울을 건너는 몸이 자꾸 삐걱거린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집 안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며 몸을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눈이 내렸는지 온 동네가 눈에 덮여 흰빛으로 가득하다. 동네 골목길을 돌아 둘레길로 이어지는 숲 들머리에 이르니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다. 발자국을 따라 둘레길로 들어서니 잎을 떨구어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흰 눈꽃이 피어서 허룩하던 숲에 오히려 생기가 도는 듯하다. 밤새 아우성치던 골바람도, 숲속 빈터의 낙엽들도 흰 눈에 덮여2026.01.14 13:10
해가 바뀌고 첫 산행이다, 가볍게 시작하려고 택한 트레킹 장소가 안산 자락길이다. 출발지인 독립문역에 내리니 뺨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맵차다. 낮은 기온 덕분에 공기는 맑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활엽수들이 잎을 모두 떨군 실가지로 얼음장 같은 파란 겨울 하늘을 부지런히 비질하고, 덤불 사이로 몇 마리의 참새들이 발소리에 놀라 쳐다본다.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은 7㎞ 길이의 전국 최초 순환형 무장애 탐방로로 장애인·노약자·어린이 등 보행 약자는 물론 휠체어·유아차도 쉽게 숲을 즐길 수 있는 숲길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한강·인왕산·북한산·청와대 등 다양한 조망도 즐길 수 있다. 안산(鞍2026.01.07 14:12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다. 선물 같은 새해를 맞아 우리는 저마다 소망을 가슴에 품는다. “새해 작은 꿈 하나 있다/ 새벽에 일어나 마당에 나서는 일이다/ 바람은 어디서 오는지/ 별들은 언제 잠들고 일어나는지/ 그 짙은 어둠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누가 훔쳐 갔는지/ 꽃씨들은 눈 속에 살아 있기는 한지/ 산그늘은 왜 마을을 들러 가는지/ 가난은 어째서 평화로운지/ 잠시 마당을 서성이는 일이다// 오늘 밤은 별이 참 많네,/ 들어와 책상에 앉는 일이다” –김용만의 시 ‘꿈’ 일부신문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 무릎을 쳤던 것은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면서 가족이나 친지, 지인들로부터 수많은2025.12.17 13:19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는 저지대 수평 산책로다. 북한산 자락을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은 전체 길이가 71.5㎞에 이르지만 21개의 다양한 코스가 있어 누구나 쉽게 자연과 벗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숲 모임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여서 송년 모임을 겸하다 보니 걷기에도 편하고 시간도 여유로운 둘레길을 택한 것이었다. 코스도 길지 않고 걷는 길도 편안하여 여느 때와 달리 시간도, 마음도 여유로웠다. 12월의 싸늘한 냉기는 걸음을 재촉하기에 좋은 조건이었지만 우리는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사부작사부작 걸었다. 도봉산역 앞에2025.12.03 14:34
마침내 12월이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야말로 ‘마침내’란 부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이다. ‘마침내’란 말 속엔 지난 열한 달의 시간을 잘 견디고 통과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12월 달력 한 장의 무게가 지난 열한 달의 무게와 맞먹는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속절없이 또 한 해가 덧없이 지나간다는 생각에 공연히 안절부절못하고 허투루 살아온 지난 삶을 반성하기도 하고, 때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이벤트가 송년회다. 직장을 비롯해 동창이나 친구 모임, 각종 동호회까지 송년회 모임도 다양하고 모임마다 송년회의 풍경도 제각각이고 천차만별2025.11.26 13:59
지난주엔 시제(時祭)를 지내느라 고향 선산을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음력 시월로 접어들며 시제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제는 시향제(時享祭)의 준말로, 해마다 지내는 5대조 이상의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다. 조상의 묘를 찾아 제를 올리는 일은 매우 경건한 일이나 산을 오르내리며 일일이 제수를 차리고 준비하다 보면 번거롭고 힘든 것도 사실이다. 깔끔하게 단장된 봉분과 달리 산을 오르는 길은 온통 낙엽으로 덮여 있다. 떨어져 쌓인 낙엽을 보면 때가 되면 다시 뿌리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일까. 푹푹 발이 빠지는 낙엽을 밟으며 산을 오르다 보면 허무함과 함께 인생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여름내 초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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