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고전산책-채근담(2)]-일고일락(一苦一樂)

공유
0

[고전산책-채근담(2)]-일고일락(一苦一樂)

■ 고전산책-채근담(菜根譚)



一苦一樂(일고일락)




一苦一樂相磨練일고일락상마련 練極而成福者연극이성복자 其福始久기복시구

一疑一信相參勘일의일신상참감 勘極而成知者감극이성지자 其知始眞기지시진






괴로움과 즐거움을 번갈아 겪어 서로를 마모, 단련시킨

탁마 지극으로 복을 이룬 자는 그 복이 바야흐로 변치 않고

의문과 믿음을 차례로 겪어 서로를 탄핵, 문초한

평정 지극으로 앎을 이룬 자는 그 앎이 비로소 진리가 된다.





해설



만물 속에는 서로 반대되는 기운이 아울러 있다. 그러나 그 극단은 서로를 전면 부정하는, 곧 서로를 없이하려는 데 있진 않다. 부정의 긍정 혹은 긍정의 반정이라는 필요불가분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상반됨은 몸으로도, 정신으로도, 감정으로도, 마음으로도 반드시 공존을 전제한다. 단지 조금쯤 각기 자리한 비율의 변화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드러남과 감춤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은 괴로우면 그 괴로움이 필요 없다하고 무조건 피하고 싶어 한다. 고통의 좋은 측면이 있을 줄 아무도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으며, 고통은 고통으로만 점철되어 모든 것을 앗아 갉아먹는 것 같다. 허나 그러한 고통의 극단을 맛본 연후엔, 뒤미처 따라올 환희할 때의 풀잎 같은 떨림에도, 그 여파는 실로 주어진 것보다 훨씬 더 증폭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것 안에 주어지는 매순간의 상반적 엇걸림 파동은 모든 감정, 마음, 정신적인 것까지도 그렇게 번갈아 오는 것이지, 한 가지 상태로만 지속하도록 두지 않는 것이 바로 우주의 질서다. 그것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 끼쳐오는 영향으로도 그렇다.

하물며 진리라는 절대치를 상정할 때야, 여하한 방식으로든 마구 뒤흔들어 끝에 끝까지 의문하고도 여전히 참값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극끼리의 서로를 되돌려 끝내 화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 할 수 있다는 것조차 누려라. 나무의 나이테는 한해의 봄여름가을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한겨울을 잘 견뎠다는 피부의 羽化(우화)로써, 속심을 그만큼의 깊이로 떠밀어 넣어 해가 갈수록 위로 뻗어 나아감을 더 단단케 한다.



장은조 번역․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