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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히사시의 산촌일기(3)]-자애의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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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히사시의 산촌일기(3)]-자애의 눈길

혼다 히사시의 산촌일기(3)




자애의 눈길



내가 뿌린 씨앗들이 한여름 텃밭에서 자란다

새로 입적한 나의 가족들이다

상추 고추 가지 호박 딸기 토마토 옥수수 등의

이름 앞에 김씨 성을 달아준다

김상추 · 김고추 · 김가지 · 김호박 · 김딸기 ……
호미를 쥔 가장의 마음은 뿌듯하다

내 몸 잎사귀 가장자리마다 땀방울이 맺힌다

흙 속에 몸을 비끄러매고 세상을 훔쳐보는 눈,

잡초의 이름 앞에도 김씨 성을 달아준다

잡초를 뽑아내는 내 손이 멈칫거린다

김잡초, 그러나 나는 단호하다

늘어나는 식구들 때문에 가장은 바쁘다

흙의 뜻을 하늘에 감아올리는 가장은 바쁘다

오늘은 아버지께 한나절 햇빛을 더 달라고 한다

목마른 내 가족들에게 한 소나기 퍼부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아, 살아있는 날의 기도여!



이 시는 한국에 살고 있는 시인 김종해의 「텃밭」이란 작품이다. 소박한 시 한 편이 전해주는 이 벅찬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텃밭」이란 아마도 김종해 시인이 정성어린 손길로 보살피는 자그마한 채소 정원을 일컫는 것이리라. 그곳에서 기르고 있는 모든 작물의 이름에 김씨 성을 붙여 마치 자식의 이름을 부르듯이 말을 건단다. 그 한 구절만으로도 김종해 시인의 정신세계를 엿보는데 부족함이 없다.

좀 더 읽어 내려가면 「내 몸 잎사귀 가장자리마다 땀방울이 맺힌다」라고 하는 행에서 재배하고 있는 야채와 인간인 자기 자신이 똑같은 생명을 가진 생명체라는 사실을 지극히 당연한 듯 묘사하고 「잡초의 이름 앞에도 김씨 성을 달아준다」로 시를 이어간다. 작가는 자신이 키우고 있는 채소들을 위해 뽑아야 할 존재인 잡초에게조차 「김잡초」라 이름 붙여버리고는 「잡초를 뽑아내는 내 손이 멈칫거린다」라고 읊고 있다. 잡초 또한 채소나 인간처럼 생명을 가지는 것. 「멈칫거린다」는 것은 자신의 손으로 또 다른 생명을 거둘 수밖에 없는 아픔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김잡초, 그러나 나는 단호하다/늘어나는 식구들 때문에 가장은 바쁘다/흙의 뜻을 하늘에 감아올리는 가장은 바쁘다」며 이름을 불러버렸기 때문에 오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같은 성씨를 가진 잡초를 뽑는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미묘한 심적 동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햇빛을 구하고 비를 구하는 기도로 전이시켜 「아아, 살아있는 날의 기도여!」라고 하는 비장한 탄성으로 마무리했다. 이 기도는 어쩌면 채소나 잡초의 기도임과 동시에 인간의 환경파괴에 대한 반성의 기도는 아닐른지.

글: 혼다 히사시/번역: 신현정(가나가와 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