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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수감' 비상…옥중 경영-전문경영인 체제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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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수감' 비상…옥중 경영-전문경영인 체제서 고민

[한화그룹의 기업문화(6)]한화의 시스템

(6)한화의 시스템: 경영도구 & 운영


[글로벌이코노믹=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국내 대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오너 1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다. 오너의 역량이나 능력과 관계없이 오너가 신(神)처럼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다. 1심에서 법정 구속된 김승연 회장의 유죄 판단 근거도 계열사 임원이 작성한 노트에서 ‘김승연=신(神)의 경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화는 개인차원의 구상일 뿐 강연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화의 기업문화를 진단하기 위해 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개발한 SWEAT Model의 다섯 번째 DNA인 시스템(System)을 경영도구(methodology)와 운영(operation)의 측면에서 평가해 보자.

그룹선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시나리오 경영 준비"

김승연 회장이 구속집행 정지를 신청하면서 심신상실 등의 이유를 제기하자, 검찰은 임원들이 구치소 면회를 통해 세밀한 지시를 받고 있어 사유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검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구속집행 정지를 결정했고, 5월말까지 1차례 연장됐다. 항소심에서 1심보다 1년 낮은 징역 3년 형이 선고되었기 때문에 구속집행 정지기간이 종료되면 김승연 회장은 다시 수감돼야 한다. 대통령 특별사면이라는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상고심이 끝나야만 가능하므로 당분간 경영공백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업무상배임혐의로기소된김승연한화그룹회장이항소심결심공판을마친뒤지난4월1일구급차에실려서울서초동서울고등법원을빠져나가고있다.
▲업무상배임혐의로기소된김승연한화그룹회장이항소심결심공판을마친뒤지난4월1일구급차에실려서울서초동서울고등법원을빠져나가고있다.
한화가 비상시국을 대처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옥중경영’과 ‘시스템 경영’이다. 옥중경영은 김승연 회장이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주요 경영현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의사결정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1993년 외화밀반출로 2개월간 구속되었을 때도 주요 현안을 직접 처리했다. 이번에도 1심에서 법정 구속되었을 때 구속기간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는지 모든 현안을 직접 보고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자충수였다. 한화 창립 60주년 기념행사나 야구단 운영 등 세세한 부문까지 직접 지시를 내렸던 옥중경영이 유죄를 입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검찰이 구치소 면회기록을 무기로 김승연 회장이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으며 그룹의 모든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치소나 교도소의 면회내용이 기록되기 때문에 구속집행정지나 특별사면, 감형 등의 선처를 받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옥중경영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시스템경영으로 가야 하는데 과연 한화의 조직이 시스템경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비되어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전문경영인 체제가 이미 구축되어 있고, 김승연 회장의 아들인 김동관 실장이 주요 현안 회의에 배석하면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시스템경영을 정착시키기 위해 시나리오 경영도 이미 도입했다는 주장도 한다. 시나리오 경영은 삼성그룹이 처음 도입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외부환경이 급변하면서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이 2000년대 초부터 도입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하게 정착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나리오 경영은 환율변동, 원자재가격변동, 국제정치 역학관계 변화 등 외부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기업이 위기를 선제적으로 대응하는데 장점이 있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 시나리오 경영의 요체는 발생 가능한 상황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느냐다. 즉 시나리오를 잘 구성하지 못하면 시나리오 경영은 형식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외부환경에 대한 정보수집을 바탕으로 미래시장 예측능력을 보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선진국 글로벌 기업들이 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보급하고 있는 글로벌정보경영전략(GIMS, Global Intelligence Management Strategy)를 도입하고 있는 것도 정보수집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을 예로 든다면 2013년 국내 대기업은 원 달러환율이 최소 1$:1200원대에서 사업계획을 수립했지만 이미 1100원대 초반으로 내려가면서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달러와의 환율도 고민이지만 한국과 수출품목이 많이 겹치고 있는 일본의 엔화 평가절하는 더 충격적이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엔화 약세를 용인하면서 대기업의 수출환경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도 계속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원유, 철강석, 석탄, 곡물 등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고 있어 선물투기를 한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시나리오 경영이나 시스템 경영이 말처럼 쉽지 않다. 한화도 김승연 회장의 부재를 시스템 경영으로 커버한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이라크 등의 해외사업에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해 사업 진척이 더디다. 재판결과를 낙관해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구속된 점도 시나리오 경영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을 나타낸다. 국민의 법 감정이 사법부에 우호적이지 않아 대기업 총수의 범죄행위에 관대하게 판단하던 재판부의 정책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시나리오 경영을 하려면 GIMS로 외부환경변화에 대한 정보를 수집·분석해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ERP 등 다양한 시스템 정비로 경영혁신 활동


한화는 경영도구(methodology) 도입의 일환으로 전사적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공생전략시스템 등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 계열사별 중장기 정보화전략계획(ISP, Information Strategy Planning)에 따라 ERP를 도입하고 있다. ERP는 국산 솔루션보다는 글로벌기업들이 도입하고 있는 SAP 솔루션을 선택했다. 경영의 투명성과 계열사별 통합 등을 염두에 둔 결과다. ERP는 도입하면서 선진경영기법을 체험할 수 있고,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도 가능해 대기업이 경영혁신을 위한 시스템 도입 시 가장 먼저 선택한다.

한화가 정비하고 있다는 공생전략시스템은 매우 생소한 용어인데, 대·중소기업 공생발전을 위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솔루션으로 구축된 시스템이라고 보다는 의사결정체제라고 보여진다. 협력업체를 지원하고 상생을 위한 실천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신사업도 중소기업의 업종을 침해하는지 그룹차원에서 검토한다. 정기적으로 계열사들의 사업포트폴리오를 리뷰(review)해 문제가 없는지 점검한다. MB정부가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가속화하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내 놓은 대책이라고 보인다. 실효성만 있다면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에도 부합하는 시스템이다.

▲지난4월9일여수여문초등학교에서열린한화케미칼의'내일을키우는에너지교실'.에너지교실은올연말까지26개초등학교1600명에게총34회운영된다.
▲지난4월9일여수여문초등학교에서열린한화케미칼의'내일을키우는에너지교실'.에너지교실은올연말까지26개초등학교1600명에게총34회운영된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시스템을 제외하면 한화가 다른 기업과 비교해 특화된 경영도구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한화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비해야 한다. 기업은 잘 나가고 이익이 많을 때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영자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되는데’라는 사고를 가지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 시스템은 직원 개개인의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자동적으로 점검하고 위험(risk)을 감지해 알려 준다. 시스템으로 위험을 관리하고 조직을 통제해야 한다.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시스템 경영이 자연스럽게 정착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의 운영(operation)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경영도구를 도입한다고 해도 이를 운영하는 직원들의 능력, 규정과 프로세스를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입한 시스템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된다. 한화도 M&A로 성장하기는 했지만 체계적인 운영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지는 못하다. M&A로 체질을 바꾼 두산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인수한 대우나 신동아의 계열사들이 기존의 계열사보다 더 훌륭한 운영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경영혁신활동이 내부의 역량에 의존하기보다는 외부의 충격에 의한 경우가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 속담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낸다’는 말이 있는데,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필요가 없다. 기업문화 혁신활동을 할 때 이 말을 많이 사용한다. 굴러온 돌인, 인수한 기업들의 운영능력을 연구해 그룹에 확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부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외부의 충격을 활용하는 것이다. 운영혁신도 기업문화 혁신에서 가장 바꾸기 어려운 요소(element)들 중 하나다.

기업문화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지속성(sustainability)이 필요한데, 하루 아침에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전(前) IBM 회장인 루 거스너는 “기업문화는 고무줄과 같아서 변화하는 방향으로 계속 당겨야 한다. 어느 순간 손을 놓아 버리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거나 오히려 악화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기존 기업문화에 익숙한 직원들이 저항하는 것은 기존의 것을 버려야 하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저항이 강렬하고 기업문화혁신이 실패하면 관성(inertia)에 의해 조직은 과거로 돌아간다.

한화가 비전 2020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다른 대기업이 도입한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선택하기 보다는 한화의 기업문화를 잘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찾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국내 대기업의 기업문화를 진단하면서 놀라는 점은 대부분 동일한 시스템을 아무런 고민 없이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도입한 시스템이 도입비용에 비해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놀랄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한화는 SK그룹이나 두산그룹과 마찬가지로 성장전략을 M&A로 삼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게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