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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유권 갈등으로 ASEAN과 대립각…RCEP에도 영향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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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유권 갈등으로 ASEAN과 대립각…RCEP에도 영향 불가피

[글로벌이코노믹 조은주 기자] 군사훈련과 인공섬 개설 등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강화 행보를 보이면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중심으로 탈(脫) 중국 성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ASEAN 국가가 포함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최근 타결되면서 ASEAN 국가와 중국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초 남중국해 말레이시아 군사 기지에서는 전례 없는 광경이 목격됐다. 바로 미군의 최신예 대잠 초계기 P8이 군사 기지에 등장해 연료를 보급하고 돌아가는 모습이다.

13일(현지시간)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ASEAN 관계자들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말부터 미군에게 군사 기지 2곳을 개방했다. 한번 비행할 때마다 허가를 얻는 방식인데 P8가 입수한 정보는 모두 말레이시아 측에도 제공된다.

남중국해 난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틀리 제도) 암초를 매립해 인공섬을 짓고 이 지역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앞서 중국은 9일 이 지역에 화양(華陽)과 츠과(赤瓜) 2곳의 등대를 완공했다고 밝히며 이 지역 영유권을 주장한 바 있다.

중국 외교부는 10일(현지시간) 화춘잉 대변인 이름으로 담화를 통해 난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틀리 제도)의 산호초 화양초(華陽礁)초과 츠과초(赤瓜礁) 2곳에 등대가 완공돼 전날부터 가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사진은 화양초에 건설된 등대의 모습. / 사진=뉴시스 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외교부는 10일(현지시간) 화춘잉 대변인 이름으로 담화를 통해 난사군도(南沙群島·스프래틀리 제도)의 산호초 화양초(華陽礁)초과 츠과초(赤瓜礁) 2곳에 등대가 완공돼 전날부터 가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사진은 화양초에 건설된 등대의 모습. / 사진=뉴시스

말레이시아 정부 측 관계자는 “중국도 이에 대해 눈치 챘을 것”이라면서 “말레이시아는 이미 중국의 반발을 살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사실 말레이시아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다. ASEAN 외교 담당자의 설명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을 놓고 다투면서도 중국에 유화적인 자세를 바꾸지 않았던 국가였다.

하지만 중국이 영유권 야욕을 드러내자 말레이시아도 중국과 정면으로 맞서던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같은 노선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 소식통은 중국 해군이 2013년과 2014년 봄 두 차례에 걸쳐 말레이시아 앞바다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또 올해 6월에는 말레이시아 배타적 경제 수역 (EEZ) 내에 중국 감시선이 나타나 말레이시아 군함과 대치 상황을 벌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위기감을 느낀 말레이시아는 미군 함선의 기항 허가를 이전보다 4~5배로 늘렸고 남중국해 연안에 해군 기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외교 담당자는 “군사적으로 볼 때 말레이시아는 ASEAN의 한 축이었다”면서 “말레이시아가 움직이면 ASEAN 전체의 대 중국 성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ASEAN은 중국에 대해 세 가지 성향으로 분리되는데, 첫 번째는 중국 강경파로 필리핀과 베트남, 친중파로 캄보디아와 라오스, 그리고 중립파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이 바로 중립파다.

또 말레이시아와 더불어 주목되는 나라가 ASEAN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는 중국과 직접적으로 영유권 갈등을 벌이지 않는 국가로 얼마 전까지도 중국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최근 남중국해 남쪽에 위치한 나투나 제도에 중국 함선이 나타나면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나투나섬은 천연가스 저장량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군대는 미군과 올해 4월에 이 지역 정찰을 시작했고 8월에는 상륙 훈련을 실​​시했다. 인도네시아 해군 관계자는 "미군과의 훈련을 정례화하겠다"고 밝히면서 나투나 지역 부군의 해군 정찰도 강화할 뜻을 밝혔다.

ASEAN 국가들의 이러한 탈 중국 경향은 앞으로 TPP에 대항한 경제 공동체 군을 형성하려는 중국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TPP 타결 직후 중국은 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8일 정례브리핑에서 “아태지역 경제발전의 수준은 서로 다르다”면서 “발전상의 차이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개도국 경제체의 특수한 수요를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각 당사국이 평등하게 협상에 참여함으로써 개방적이고 포용적으로 지역의 자유무역지대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며 ASEAN국가들을 입장을 두둔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단기적으로는 TPP가 중국의 대외 무역에 일정 정도의 타격이 될 수도 있지만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TPP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장옌성(張燕生)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학술위원회 비서장은 중국이 여러 국가와 FTA를 체결 또는 담판을 진행해 온 만큼 TPP에 대응할 만한 카드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발개위 대외경제연구소의 장젠핑(張建平) 국제협력실 주임은 TPP가 출범하면 관세 인하 조치로 미국시장에서 베트남의 섬유와 의류 등이 중국산보다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또 말레이시아와 일본의 전자·기계류가 중국산을 대체하면 자국의 교역, 수출 부문에서 일자리가 줄고 관련 업체 도산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중국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현재 RCEP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는 ASEAN 10개국과 한, 중, 일, 인도, 호주, 뉴질랜드로 이들 나라의 인구 수는 약 34억2000만명,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약 21조6000억달러로 TPP의 7억9000만명, 27조7000억달러보다 규모 면에서는 크다.

중국 정부는 RCEP 협상을 연내 마무리 짓겠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ASEAN 중립국들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다. ASEAN 10개국 가운데 현재 중국에 우호적인 국가는 태국과 캄보디아, 라오스뿐이다.

조은주 기자 ej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