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소한(小寒)이었다. 소한에 얼어 죽는 사람은 있어도 대한(大寒)에 얼어 죽는 사람은 없다고 할 만큼 우리나라의 소한 추위는 매서웠지만 올해는 새해 첫날부터 이어진 따뜻한 날씨로 포근했다. 강추위에 몸과 마음을 움츠리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때 아니게 포근한 날씨가 절로 반가웠다. 한낮의 햇볕 속에서 새해의 풍경은 생기를 발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는 고 신영복 선생의 말에는 시간 위에 세로로 무수한 선들을 내리그어서라도 혹독한 세상과 삭막한 인생살이 속에서 매번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찾아낸 희망을 동력 삼아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지혜가 담겨 있다. 새해 첫날의 첫 태양만큼 사람들에게 큰 위안과 희망을 선사하는 처음은 없다. 겨울날은 계속되지만 큰 처음을 만난 사람들에게 남은 겨울은 이미 지난겨울과는 다르다. 소한, 대한의 추위가 아니라 그 너머 입춘(立春)의 봄바람을 사람들은 보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는 인간의 긴 유년기와 늙고 병들어 외로운 노년기는 한해의 처음과 마지막을 닮았다. 그러나 계절이 춥고 메마를지라도 사람의 시절까지 그럴 수는 없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느냐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알고 키워 갈 수 있는 사회, 최선을 다한 한 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사회를 우리는 만들어가야 한다. 세상 속 겨울과 겨울 사이의 계절들을 계절답게 회복할 때 우리 사회의 겨울은 저절로 따뜻해질 것이다. 올해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계절과 거리가 멀었던 우리 사회의 길고 차가운 겨울을 과거로 떠나보내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불공정한 사회, 불평등한 사회에서 성공은 소수의 신화가 된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신화가 된 성공은 신격화된 개인을 낳는다. 신격화된 개인은 그 자체로 우상이다. 우상은 다만 허상일 뿐이다. 허상의 실체는 초라할 때가 많다. 우리의 삶은 신화가 아니라 현실 속에 있다. 신화가 발붙일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신화가 사라진 시대의 현실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계절은 저절로 돌아오지만 새로운 처음을 끊임없이 시작하지 않는 한 현실은 다시 신화로 오염된다. 저마다의 가슴 속에서 싹튼 사람들의 소망 가운데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에 대한 갈망이 공통적으로 들어있었으리라 믿는다. 개인적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노력에 있듯,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은 오직 참여의 실천으로 실현된다. 올해가 특별한 해인 것은 첫 태양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저절로 자란 것이 아니다. 신화의 이면에서 우리가 뿌리박고 사는 현실의 참모습을 인식한 사람들이 현장으로 달려간 덕분이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운명도 다만 현장에 설 때 변한다. 그것이 현실의 정직함이다.
새해는 떠올랐지만 아직 정유년(丁酉年)은 오지 않았다. 병신년(丙申年)은 입춘 전날까지 계속된다. 정유년의 봄소식은 각별히 반가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