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그 복종의 결과로,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1961년 예일대학 심리학과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는 기억력에 관한 실험을 위해 교사 역할을 모집하는 광고를 신문에 게재했다. 최종적으로 총 40명의 실험 참가자가 결정되었는데 그들은 20대부터 40대까지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실험실에서 맨 처음 마주한 것은 15V에서 450V까지 30개의 버튼이 달린 전기충격기였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칸막이 너머 학생이 문제를 틀릴 경우, 그 벌로 전기충격을 가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그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은 4.5달러였다. 밀그램을 비롯한 실험주최 측은 단 0.1%만이 450V까지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의 실험결과는 매우 의외였다. 무려 65%의 참가자들이 450V까지 전압을 올렸던 것이다.
이 실험을 실시하기 전, 주최 측은 예일대 학생을 대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가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럴 수 없다.”란 대답이 92%였다. 그런데 기껏해야 0.1%만이 450V까지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65%가 선택한 450V, 그들 65%는 말한다. “내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시켜서 한 것일 뿐이에요.” 이 실험은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을 표방했지만 실은 ‘권위에 대한 복종과 관련된 실험’이었다. 학생 역할을 담당하는 피험자들은 모두 연기자였으며 그들에게 가짜 전기 충격장치를 달아주고, 교사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가짜란 사실을 모르게 한 채 실행된 실험이었던 것이다.
이 실험은 평범한 인간이 권위에 복종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충격적인 실험이다. 또한 ‘일상적인 삶’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은 지금까지 우리의 신념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를 경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그 일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였던 독일 나치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은 재판에서 “유대인을 죽이라는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을 뿐 내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본 밀그램 교수가 과연 인간은 ‘권위적인 불법적 지시’에 항거하지 못하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이 실험을 계획했다고 한다.
우리는 죄 없는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것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일반적 도덕규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피험자들은 이런 일반적인 도덕규범에 상충하는 행위를 하고 말았을까?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아무리 권위 있는 교수의 지시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목숨이 위험할 만큼의 전기자극을 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판단을 스스로 내리지 못한 채, 권위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는 사실은 정말로 무서운 일이다. 이 실험을 통해 도덕성의 발현은 비도덕성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스스로의 가치관이 확고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일상적인 삶 속에서 평범한 인간들이 타인의 시선, 그리고 상식이라는 권위에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실행에 옮기지 못하거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상에서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가치관을 확립함으로써 전문가의 권위, 혹은 상식의 권위에 용감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용기가 비로소 우리를 타인의 시선이나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는 주체적인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