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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大山 신용호 창립자 탄생 100주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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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大山 신용호 창립자 탄생 100주년 맞아

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글로벌이코노믹 김대성 기자] 교보생명이 올해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신용호 창업주는 생명보험 외길 인생을 통해 ‘보험의 선구자, 보험의 거목’으로 불리며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보험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2003년 9월,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대산의 삶을 관통했던 키워드는 ‘국민교육’, 즉, ‘참사람 육성’이었다.

그가 평생 지향했던 ‘교육’은 학교교육을 뛰어넘는, 보다 포괄적이고 실전체험을 통한 ‘산교육’이었다.

실제 이력서의 최종 학력란에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운다’라고 썼던 대산에겐 만나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배움의 대상이었다.

그에게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란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자기개발과 인간성장을 일생 동안 추구하는 참사람을 키워가는 것’이었다.

일제 식민지와 6.25전쟁을 거치며 치열했던 삶을 통해 피어난 ‘국민교육’에 대한 열정은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을 탄생시켰고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교보문고를 세웠으며, 대산문화재단 등 3개 공익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1917년 전남 영암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대산은 어린 시절 병마와 싸우느라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천일독서(千日讀書)’로 배움의 열망을 채워나갔다. 뒤늦게 시작한 독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했다.

스무 살이 된 청년 대산은 큰 꿈을 품고 조국을 떠나 만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중국 다롄, 베이징 등지에서 사업을 펼치던 대산은 이육사 등 애국지사와 교류하며 민족기업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해방 후 귀국한 대산은 한국전쟁의 상처로 피폐해진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교육이 민족의 미래다’라는 신념으로 교육보험 사업을 결심했다.

치열한 연구 끝에 생명보험의 원리와 교육을 접목한 ‘교육보험’을 창안하고, 1958년 8월 7일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을 창립이념으로 내세운 교보생명은 회사 이름부터 남달랐다. 다른 생명보험사와 달리 ‘○○생명보험’이 아닌 ‘대한교육보험’이라 이름 붙인 것.

교육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고, 보험을 통해 자립경제의 바탕이 될 자본을 형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창립과 동시에 ‘진학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교육보험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창적인 보험상품이었다. 교육보험은 곧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 됐고, 높은 교육열과 맞아떨어지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이후 30년간 약 300만 명의 학생들이 학자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교육의 기회를 얻게 된 인재들은 196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된다.

교보생명은 교육보험의 선풍적인 인기로 1967년 창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오르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로 퇴직보험과 암보험을 개발하고 계약자배당금 시대를 여는 등 보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며 한국 보험산업을 세계 8위권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대산의 ‘국민교육’에 대한 신념 한 가닥이 교보생명으로 구현되었다면 다른 한 가닥은 교보문고였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산의 신념은 국내 최대의 서점 ‘교보문고’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광화문 네거리, 금싸라기 땅에 돈도 안 되는 서점을 들이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많았다.

교보생명의 창립당시 종로사옥이미지 확대보기
교보생명의 창립당시 종로사옥
그러나 대산은 “사통발달 대한민국 제일의 목에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작가나 대학교수,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도 탄다면 그 이상 나라를 위하는 일이 어디 있으며, 얼마나 보람 있는 사업입니까”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1981년 6월 교보문고가 문을 열었다. 단일면적으로 세계 최대규모로 서가 길이는 무려 24.7km에 달했다.

교보문고는 개장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명소가 됐고, 그의 소망대로 국민 누구나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지식과 문화의 광장이자 평생교육의 장이 됐다.

대산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에서도 ‘국민교육’의 신념을 놓지 않았다. 대산농촌재단, 대산문화재단, 교보교육재단 등 3개 사회공익재단을 설립해 선진농업연구, 교육과 문학 지원사업, 장학사업 등을 펼치며 소외된 곳까지 교육과 지식의 뿌리를 내리도록 했다.

광화문의 명물 ‘광화문글판’도 대산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광화문글판은 1991년부터 27년째 한자리를 지키며 시민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대산은 개인에게 닥친 고난을 스스로 극복하고, ‘참사람 육성’이라는 남다른 교육철학을 실천해 국가 발전에 기여한 창의적 경영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대산은 세계적으로도 공로를 인정 받아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로부터 보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며 ‘보험의 대스승’으로 추대됐다. 1996년에는 ‘세계보험 명예의 전당(Insurance Hall of Fame Award)’에 헌정되며 전 세계 보험인의 귀감이 되었다.

대산 신용호 창립자 탄생 100주년을 맞아 7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기념음악회가 열린다. 또 대산의 발자취를 담은 기념사진전이 28일까지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와 강남 교보타워 등에서 개최된다.


김대성 기자 kim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