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김박사의 경제진단] 문재인 정부 금융정책과 JP모건… 최종구 금융위원장 금융의날 치사 속뜻

기사입력 : 2017-11-02 10:37 (최종수정 2017-11-02 15:35)

  • 인쇄
  • 폰트 크기 작게
  • 폰트 크기 크게
공유 2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구글플러스 공유하기
















center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융의 날 치사에서 JP모건의 상생정신을 배우자고 주장해 주목을 끌고 있다. JP모건의 디트로이트프로젝트는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 하고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대호 박사의 기업분석 미국 최고 금융기관 JP모건 경영이야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대기자]
“JP모건을 배워라.”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요구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2회 금융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최근 금융권의 수익이 증가하면서 금융기관이 그 수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JP모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 위원장의 이날 발언 이후 우리 금융계에서는 때 아닌 JP모건 배우기 운동까지 일고 있다.

JP모건은 최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1억5000만달러를 투입해 일자리 창출과 소기업 활성화에 앞장섰다. 미국 언론들은 이를 JP모건의 ‘디트로이트 투자(Invested in Detroit)’ 프로젝트라 부르고 있다. 미국 격주간 경제전문지 포천은 “JP모건이 도시 외곽 재생사업에 투자하면서 17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고 100개의 사업체가 자금조달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쇠락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디트로이트시가 JP모건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금융정책의 핵심방향으로 ‘생산적 금융’을 설정하고 있다. 미국 JP모건의 디트로이트는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생산적 금융의 한 예인 셈이다. JP모건은 디트로이트 지역의 자동차업체와 거래하면서 높은 수익을 올린 다음 그 돈을 현지 경제 재건에 쏟아부었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언급한 디트로이트 사례를 국내에 적용한다면 조선업 불황으로 신음하고 있는 거제도나 목포 등에서 재생 프로그램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JP모건은 미국에서 가장 큰 금융기관이다.

한때 영국 HSBC와 미국 씨티그룹에 밀리기도 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지금은 제1의 금융기관으로 거듭났다.

JP모건의 정식 이름은 JP모건체이스이다. JP모건과 체이스은행이 통합하여 더 커졌다. 월가에서는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했고 JP모건이 그 세상을 재창조했다”는 말이 있다. 월가의 우스갯소리이지만 JP모건이 그만큼 대단한 곳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JP모건체이스의 역사는 17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미국 뉴욕에서는 수도 건설이 시작됐다. 수도 건설에 소요되는 자금을 효과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은행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바로 그 자금 조달을 위해 만들어진 은행이 맨해튼이다. 맨해튼은행의 설립 주역은 미국의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역임했던 ‘아론 버’(Aaron Burr)다. 당시 아론 버가 만든 맨해튼은행이 오늘날 미국 최대 금융기관인 JP모건체이스의 모태인 맨해튼은행이다.

맨해튼은행은 1955년 체이스은행과 합하여 체이스맨해튼은행으로 발전한다. 체이스맨해튼은 케미컬은행과도 합병한다. 케미컬은행은 화학업체 대표들이 연합하여 1824년 출범한 은행이다. 한때 미국 3위의 상업은행으로 위용을 떨치다가 1996년 체이스맨해튼은행과 흡수 합병한다. JP모건체이스 또 하나의 뿌리는 1838년 설립된 런던의 피바디 은행이다. 이 은행의 오너였던 피바디는 유대자본의 상징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이다. 로스차일드의 미국 내 영업권도 이 회사가 보유했다. 그 인연 때문에 지금까지도 JP모건과 로스차일드가 한통속이라는 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1861년 스펜스 모건이 피바디를 인수했다. 스펜스 모건은 이를 1864년 아들에게 상속했다. 상속을 받은 인물이 바로 모건그룹의 창업주로 불리는 JP모건이다. JP모건은 인수하자마자 아버지가 지은 JS모건이라는 상호를 버리고 대신 자신의 이름을 딴 JP모건을 새로 내세웠다.

은행가 JP모건은 유럽 각국에서 돈을 들여와 그 자금으로 미국의 철도와 철강 그리고 전신, 자동차 전화 등에 투자했다. 그 유명한 파나마 운하 건설자금도 JP가 모았다. 모건의 돈이 없었다면 미국의 산업화는 지금보다 훨씬 지체되었을 것이다. 그 공로로 근대 산업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지만 모건이 그 세상을 재창조했다는 평가도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JP모건의 아들 대인 잭 모건 대에 와서는 더 번성했다. 잭 모건은 세계 1차대전이 터지자 전쟁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공채를 판 것이다. 미국 등 전 세계 각국에서 영국과 두 나라를 위한 자금을 모금해 주었던 것이다. 모건이 전 세계를 돌며 공채을 팔아 끌어모은 돈은 영국과 프랑스에 큰 힘이 되었다. 세계 1차대전의 최종 승자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 등이었다. 그중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초기 독일에 밀려 고전했으나 모건이 마련해준 자금으로 끝내 독일을 물리쳤다.

1차대전 이후 모건은 공신이 됐다. 유럽과 미국에서의 입지도 커졌다. JP모건은 그 영향력을 바탕으로 각국 정부 프로젝트를 수도 없이 따냈다. 그 힘으로 JP모건은 1920년대 초반부터 세계 최고의 금융기관으로 올라섰다. JP모건의 부상은 또 유럽의 금융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려울 때 일수록 더 기회가 많다”라는 비즈니스 격언이 있다. 그 말처럼 JP모건은 대공황 때 더 크게 성장했다. 대공황이 터지면서 사정이 열악한 한계기업들이 연이어 무너졌다. JP모건은 공황을 대비하여 미리 확보해 둔 현찰로 망해가는 금융기관과 기업들을 헐값에 마구 사들였다.

그 결과 1930년대 초 JP모건은 10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공룡그룹으로 성장했다. 당시 뉴욕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자산 가운데 40% 이상이 JP모건의 소유였다. JP모건을 통하지 않고는 뉴욕증시에서 돈을 만질 수 없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잘 나가던 JP모건은 그러나 글래스 스티걸(Glass-Steagle)법의 시행으로 큰 시련을 맞는다.

미국은 1933년 금융독점을 막는다면서 이른바 글래스 스티걸법을 도입했다 . 사실 이 법은 너무 커진 JP모건을 겨냥한 법이었다. 공권력 앞에 별수가 없었다. 결국 모건은 쪼개졌다. 일차로 증권이 분리됐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IB로 명성을 누리고 있는 모건스탠리도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지금은 서로 완전히 다른 회사지만 뿌리는 같았다.

JP모건은 또 수많은 기업에 투자되어 있던 지분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해외사업부 또한 별도 회사로 떨어져 나갔다. 그 와중에 JP모건의 영향력은 약화됐다.

1999년에 와서 금융독점 규제가 사라졌다. 글래스 스티걸 법이 폐기됐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독점법을 퇴장시킨 것이다. 모건은 이 틈을 적극 활용했다. 2000년 JP모건과 체이스맨해튼이 통합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JP모건체이스란 회사 이름은 바로 이때 생겨났다. 투자은행의 대명사였던 JP모건과 상업은행의 대표격이었던 두 은행의 합병은 미국 금융사에 한 획을 긋는 실로 큰 사건이었다. 1933년 글래스 스티걸 법 시행 이후 67년 동안 서로 갈라져 있었던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이 하나로 다시 통합된 것이다.

JP모건체이스는 당시의 통합으로 모든 금융업을 취급하는 완벽한 종합금융회사로 새로 태어났다. 투자은행 분야인 기업투자, 자산운영, 기업금융과 상업은행 분야인 여수신, 소매금융, 신용카드 등 모두 6개 분야가 한 지붕 아래로 들어왔다. 각 사업은 원칙적으로 따로 진행되지만 필요할 때는 하나로 뭉쳐 움직이기도 한다. 전문 분야와 통합 분야를 넘나들면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돈과 관련된 비즈니스는 모두 취급하는 종합금융기관으로 발돋움했다. JP모건은 2007년과 2008년에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큰돈을 벌었다. 부실을 미리 예측하여 모기지 대출에서 미리 손을 뺀 것이다.

당시 씨티은행 등 미국의 내로라는 상당수의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 위기에 휘말려 잇달아 파산했다. 그 와중에서 JP모건은 오히려 부도위기의 경쟁사들을 싼값으로 사 모았다. 그 결과로 세계 금융의 최정상에 우뚝 섰다. JP모건의 진가는 상생 협력 분야에서 더욱 빛난다. 경제공황이 생길 때마다 솔선수범하여 대출을 늘렸다. 연쇄부도를 막기 위해 스소로 자기 희생을 한 것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도 JP모건의 출자로 만들어졌다.

JP모건은 이익의 상당 부문을 고객과 고객기업 그리고 지역 사회에 재투자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JP모건의 상생전략이다.

고객이 살아 남아야 금융기관도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언급한 디트로이트 재생 프로젝트에도 같이 살아가자는 JP모건 특유의 경영철학이 서려 있는 것이다. 고객이야 어찌되었던 예대마진을 무한대로 높여서라도 자신만 살겠다는 우리나라 일부 금융기관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듯하다.


김대호 경제학박사·대기자 yoonsk828@g-enews.com 김대호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오늘의 핫 뉴스

주요뉴스

이슈·진단 많이 본 기사

가장 많이 공유 된 기사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