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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다리항아리와 굽다리바리가 출토된 경주 석장동의 2개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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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다리항아리와 굽다리바리가 출토된 경주 석장동의 2개 고분군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40)]

경주 석장동 암각화이미지 확대보기
경주 석장동 암각화
경주에서 현곡면 쪽으로 가는 도로의 남편에는 서쪽의 큰갓산(해발 215.5m)에서 동남으로 형산강을 향해 길게 뻗는 능선이 있다. 이 능선들에 분포하는 고분군이 석장동 고분군이다. 고분군은 2개로 나누어지는데, 제1군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를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싼 곳에 분포하는 것이고, 제2군은 그 동편 형산강변에 남북으로 뻗는 능선들에 분포하는 것이다. 제2군이 있는 능선의 남단에 금장대지(金藏臺址)와 석장동 암각화(기념물 제98호)가 있다.

이 가운데 제1군에는 16기의 봉토분이 분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제2군에서는 2기의 돌방무덤(石室墳)이 확인되었다. 고분군 가운데 동국대학교의 구내에 있던 1기의 돌방무덤이 1979년 동국대학교, 경주사적관리사무소, 경주박물관의 합동발굴단에 의해서 발굴 조사되었고, 동국대학교의 북편 능선에 있던 고분들의 일부가 1993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에 의해서 발굴 조사되었다.
1979년에 조사된 돌방무덤은 굴식(橫穴式)으로 도굴에 의해 심하게 파괴된 것이었다. 무덤방(墓室)은 평면 장방형(長方形)의 남향한 널방(玄室) 동편에 널길(羨道)이 붙은 형태로 널방의 서쪽에 남북으로 주검받침대(屍床臺)를 설치한 것이다. 널방은 남북길이 2.2m, 동서너비 1.82m이고 널길은 길이, 너비가 1.05×0.85m이다. 둘레돌(護石)을 기준으로 한 봉분의 직경은 약 12m로 추정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굽다리항아리와 굽다리바리 각 1점이 있다.

1993년의 조사에서는 돌방무덤 3기, 움무덤(土壙墓) 1기, 화장무덤(火葬墓) 1기가 조사되었다. 돌방무덤은 대부분 파괴된 것으로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것이 1호와 2호였다. 이것들은 모두 횡장방형의 널방 서측에 널길을 붙였으며 내부에는 1∼2개의 주검받침이 설치된 것이다. 움무덤은 장방형의 구덩이를 2단으로 파고 내부에 시신을 안치한 것이고, 화장무덤은 직경 0.65m, 깊이 0.45m의 방형(方形)에 가까운 원형(圓形)의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문양이 없는 벽돌을 뚜껑으로 한 두귀항아리를 골장기(骨藏器)로 이용한 것이다. 도굴이 심하여 대부분의 무덤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고, 교란되어 훼손된 토기편들이 발견될 뿐이었다. 이러한 토기편들로 볼 때 이 고분들은 6세기 중엽에서 8세기 후반 또는 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외에도 이 고분군에서는 중국 월주요계(越州窯系)로 생각되는 청자가 출토되었고 외호(外壺)와 내호(內壺)로 구성된 골장기가 조사되기도 하였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