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인사는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축복…설 쇠다 의미의 '과세 잘 하셨습니까'가 전통 새해인사 말

[홍남일의 한국문화 이야기] 설 그리고 ‘과세 안녕하십니까?’

기사입력 : 2018-02-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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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은 최근에 생겼다. 옛날에는 "과세 잘 하셨습니까'로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해마다 정초에 우리는 주변사람들과 새해 인사를 나눕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부자 되세요’, ‘건강 하세요’, ‘하시는 일 번창 하세요’ 등 다양한 덕담을 주고받지요. 이중에 가장 흔히 쓰이는 인사는 단연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일 것입니다.

‘복’은 원래 중국한자 ‘福’으로, 풀어보면 (示) - (一) - (口) - (田) 이 됩니다. 이 뜻은 ‘한 식구에게 충분히 먹을 밭이 생긴다.’입니다. 부자의 부(富)도 거의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과 부는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음’의 다른 말이며, 상대에게 그리 되길 바라는 미담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새해 인사는 불과 몇 십 년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고, 그 말보다 지금은 거의 사용치 않는 ‘과세 잘 하셨습니까. 또는 '과세 안녕 하셨는지요.’ 라는 인사로 새해를 열었습니다.

과세(過歲)는 사전적 의미로 '설을 쇠다'입니다. 그래서 '과세나 잘했나' 하면 ‘설을 잘 보냈나?’ 또는 '설 제사상에 약주라도 올려놓았나?' 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설 인사치고는 뭔가 어색함이 묻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세인사를 한 해 두 번해야 하는 어정쩡함이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인은 양력 1월1일과 음력설이 상존하기 때문이지요.

설은 음력으로 한 해가 시작하는 첫날, 즉 정월초하루의 명절입니다. 그런데 양력이 도입된 1896년부터 설 명절의 개념이 모호해졌습니다. 정부 시책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른바 ‘양력설’을 세고, 민간에서는 여전히 음력 명절을 즐겼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상황에 따라 새해 인사를 두 번씩이나 해야 하는 낯선 풍경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설에 대한 혼란은 ‘신정(新正·양력 1월1일)’과 ‘구정(舊正·음력 1월 1일)’이란 말을 만들어 놓았고, 설을 두 차례에 걸쳐 쇤다는 뜻에서 ‘이중과세(二重過歲)’란 말도 생겼습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1959년 모 일간지가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구정을 금한다. 치안 국에서 떡방아를 못 찧게 한다 해도 설은 역시 음력설이라야 ‘우리 설’같이 느껴지는 풍습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더구나 금년은 설이 일요일이라 학교도 쉬니 거리가 명절 냄새로 풍길 것이고 세배 돈의 저금통도 불어 날 것이다. 얼마 전만해도 그믐날 저녁때 어둠이 깃들면 동네청년들이 초롱을 해들고 떼를 지어 어른들께 세배 드리러 다녔다.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청년들이 어두운 골목길을 쏘다니노라면, 새로 빳빳이 풀을 먹인 바지저고리 스치는 소리가 동네 처녀들의 가슴을 공연히 설레게도 했었는데, 양력설과 음력설의 두 갈래에 끼여서 이제는 이런 모습도 그럭저럭 없어지는 것 같다.』

청마 유치환 시인도 1963년 내놓은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에서 ‘설 기분이 흐리멍덩한 이유는, 어쩌면 음력 과세와 양력 과세의 설날이 우리에게는 둘이나 있어 오히려 이것도 저것도 설 같지 않은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꼬집었습니다.

사실 설의 수난사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본격화 되었습니다. 일제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말살하기 위하여 음력설을 ‘구정’이라 부르며 폄훼하였습니다. ‘신정’은 신문명이고, 음력설은 조선의 낡은 풍습이기에 사라져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일제 초기에는 공무원이나 행정 관료들에 국한하여 정책강요를 하였지만, 군국주의화 한 1930년대에는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음력설을 금지하는 문화적 탄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양력 1월1일에 누가 일본식 신정(오쇼가쯔)을 지내고 있는지 살폈고, 구정이 다가올 즈음에 일본 순사는 떡 방앗간 대문에 못을 박고, 예쁜 설빔에 먹물을 뿌려 설 분위기를 해쳤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설 차례는 이중과세의 허례허식이라며 금하였습니다. 이러다보니 민간에서 설이 되면 마치 죄 짓는 양 은밀히 떡 가래를 뽑아야 했고, 만나는 사람끼리 귓속말처럼 “과세 잘 치렀습니까?” 하고 속삭였습니다. 순사 눈을 잘 피했냐는 서글픈 반문이겠지요.

마침내 해방이 되고 이듬해인 1946년 2월, 우리는 모처럼 설다운 설을 만끽합니다. 당시 풍경 역시 신문기사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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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설은 위정자에 의해 큰 고통을 받았다. 모처럼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설을 '나의 해'로 만들어보자. 자료=글로벌이코노믹

「해방 후에 처음 맞는 구정, 이 날은 시내에 있는 각 관청, 회사, 학교, 신문사도 전부 쉰다. 조선 사람은 과거 이 구정을 맞이하려고 애를 썼으나 일본 제정은 구정 폐지를 강요해서 한 번도 우리 ‘설’이라고 즐겨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없는 쌀을 절약해서 적으나마 떡도 하고 밥도 해서 조선 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선조의 제상 위에 받쳐 놓은 각 가정의 구정의 아침은 퍽 명랑하다.」

그러나 이도 잠시.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의 설에 또 다시 찬물을 끼얹습니다. 양력 1월1일 신정만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음력설은 허용치 않는 종래 일제 강점기를 답습하지요. 뿐만 아니라 당시 기독교인이 1%도 안 되었는데, 낯선 서양풍습인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지정하자 민심은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그리 했겠구나 생각은 들지만 우리네 정서를 외면했다는 마음은 금할 수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며 또 다시 설에 대해 은근한 기대를 하였지만, 정부는 한 발 더 나가 ‘구정은 시간과 물자 낭비를 초래한다.’며 더욱 가혹하게 설을 탄압하였습니다. 설을 전후에 관공서, 은행은 물론이고 일반기업도 쉬지 못하게 압력을 가했지요. 그러나 50년의 탄압에도 굳건히 이어온 설 풍습을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니고, 오히려 1967년 한 신문기사처럼,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관공서나 은행은 형식적으로만 문을 열었을 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법원에서도 재판이 열리지 않았고 경찰서에도 민원서류가 들어오지 않았다. 반면 서울역 등에는 귀성객이 몰려 혼잡했다.」 라고 전하며 휴일은 아니지만 사실상 휴일의 모습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눈칫밥 신세인 양 설 인사는 여전히 ‘과세 잘 보내셨습니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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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1985년 전두환 정부는 선심이라도 쓰듯, 음력 1월1일 하루를 휴일로 정합니다. 그런데 설이라는 고유 이름을 엉뚱하게 ‘민속의 날’로 둔갑시킵니다.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무식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정자들의 설에 대한 거부감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오늘 현재도 알쏭달쏭합니다. 아무튼 이 시기부터 새해 인사가 과세에서 차츰 복이나 건강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1989년 국민이 직접 투표하여 탄생시킨 노태우 정부(6공)에 비로소 설이란 말이 등장하고, 대통령령으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설 연휴 기간을 3일로 늘려 바야흐로 설다운 설이 정착됩니다. 개화기와 식민지, 산업화시대를 지나는 100년 동안 푸대접 받아온 설이 다시 부활한 것이지요. 이후 ‘과세 안녕하십니까?’라는 설 인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훈훈한 설 인사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모처럼 되찾은 설이 최근에는 명절 의미보다 단지 ‘노는 날’로 인식되어가고 있어 조금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홍남일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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