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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 별세]'글로벌 창업주'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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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 별세]'글로벌 창업주' 그는 누구인가?

고 구본무 회장(왼쪽)이 1986년 구자경 명예회장(가운데)의 고려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학위 수여식장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구 회장의 어머니인  고 하정임 여사. 사진=LG그룹
고 구본무 회장(왼쪽)이 1986년 구자경 명예회장(가운데)의 고려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학위 수여식장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구 회장의 어머니인 고 하정임 여사. 사진=LG그룹
[글로벌이코노믹 김병용 기자]

20일 향년 73세로 타계한 구본무 회장은 LG그룹을 세계적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만기 재대했다.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1975년 럭키(현 LG화학)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쳐 1980년 금성사(현 LG전자)로 옮겨 기획심사본부장을 맡았다. 입사 10년만인 1985년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95년 회장에 올라 3세 경영을 시작했다.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또 자동차부품과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성장사업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LG그룹
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LG그룹


그 결과 실제 구 회장 임기 중 그룹 매출은 30조원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현재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구 회장이다. LG는 2003년 3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국내 대기업 중 선진적 지배구조를 도입한 건 LG가 처음이었다.
굴곡도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20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게 넘겨줘야 했다. 1979년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더 큰 위기는 2003년 카드사태였다. 당시 국내 최대 업체인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은 물론 한국 경제가 휘청거렸다. 이 여파로 LG는 모든 금융 사업을 접었다.

구본준 회장은 R&D성과를 낸 연구원들은 발탁 승진시키기도 했다.사진은 2016년 3월 연구개발성과보고회에서 구 회장(오른쪽)이 '연구개발상'을 수여하는 모습. 사진=LG그룹
구본준 회장은 R&D성과를 낸 연구원들은 발탁 승진시키기도 했다.사진은 2016년 3월 연구개발성과보고회에서 구 회장(오른쪽)이 '연구개발상'을 수여하는 모습. 사진=LG그룹
구 회장이 마지막 작품은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프로젝트다. 4조원을 투자해 2만2000명의 연구 인력이 집결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를 만들겠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골자다.

“마곡에서 수만 명의 젊은 인재를 육성해 기술들과 산업간의 융복합을 이루겠다”던 그의 꿈은 2020년 완성된다. 마지막 꿈을 불과 2년 앞두고 구 회장은 눈을 감았다.


김병용 기자 ironman1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