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국내기업 빗장 풀리면 외국 투기자본 ‘먹잇감’ 된다

공유
0

국내기업 빗장 풀리면 외국 투기자본 ‘먹잇감’ 된다

정부·여당, 논란속 상법 개정안 국회 제출...불황에 ‘기업 옥죄기’ 우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오른쪽)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1월 26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상법개정안 정책 간담회 시작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손 경총 회장은 이날 박 장관에게 기업들이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법 개정안에 부담이 크다며 입법에 신중을 기할 것을 요청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오른쪽)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1월 26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상법개정안 정책 간담회 시작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손 경총 회장은 이날 박 장관에게 기업들이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법 개정안에 부담이 크다며 입법에 신중을 기할 것을 요청했다. 사진=뉴시스
[글로벌이코노믹 김민구 기자] “가뜩이나 불황인데 정부가 고강도 기업규제 법안을 내놔 숨통이 막힐 지경입니다.”(A그룹 임원 B씨)

“한국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게 기업을 옥죄는 것이 과연 공정경제를 실천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깁니다.”(주한외국기업 임원 C씨)
정부와 여당이 기업 경영권을 크게 제한하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이하 상법개정안)을 내놔 재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회사를 이끄는 현행 지배구조를 바꿔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소액주주도 보호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가져올 부작용에 근심이 깊어 가고 있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다중 대표소송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입법화하면 대다수 국내 대기업 이사회가 외국 투기자본에 쥐락펴락 당하는 모습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 대주주 경영권 침해하는 상법 개정안 추진

정부와 여당은 기업 지배구조개선과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상법개정안을 이번에 꼭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11월 30일 상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안보다 더 강한 별도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에 따라 개정안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보다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이 아닌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이사를 2명 이상 선임할 때 주당 이사수와 같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선임한다면 주당 3개의 의결권을 부여한다. 이는 3명의 이사를 선출할 때 1주를 가진 주주 의결권은 3주가 된다는 얘기다.

이때 주주는 특정이사에 집중적으로 투표하거나 후보 여러 명에게 분산해 투표할 수 있다. 소액주주도 의결권을 활용해 자기가 원하는 이사를 뽑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집중투표제는 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줘 엘리엣 매니지먼트와 같은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 이사회에 진출해 경영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한때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던 일본도 주주 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지 않자 1974년 의무화를 폐지했다. 이에 따라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칠레, 멕시코, 러시아 등 3개국 뿐이다.

◆다른 나라에 없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왜 입법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사내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제도다.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갖도록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한다.

대주주 의결권은 감사위원 선임 단계부터 3%로 제한된다. 다시 말하면 지분을 3% 이상 보유한 대주주라도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의결권 제한 규정을 받지 않는 외국계 투기자본이 대기업 감사위원 자리를 모두 거머쥘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현대모비스(지분 20.8%), 정몽구 회장(5.2%), 정의선 부회장(2.3%)이 주요 주주다. 이들은 이사 선임 과정에서 총 28.3%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적용되면 현대모비스 3%, 정몽구 회장 3%, 정의선 부회장 2.3%로 의결권이 8.3%로 뚝 떨어진다.

만약 외국계 투기자본이 손을 잡아 이사회를 장악하면 무리한 배당이나 자산 매각 등을 요구해 기업 경영에 큰 타격을 줄게 뻔하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를 채택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단 한 곳도 없다.

◆한경硏 “간판기업 7곳 투기자본에 넘어갈 수도”

이에 대해 재계는 기업 경영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크게 격앙된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E그룹 임원은 “경제가 어려운데 정부가 ‘기업 옥죄기’나 다름없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 경제연구소의 최근 보고서도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 이사회와 지분율을 분석한 결과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7곳 이사진 절반이 투기자본에 넘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외국계 투기자본이 손을 잡으면 30개 기업 가운데 19개 기업 감사위원을 전부 선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재계가 상법 개정안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제단체 '맏형' 인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상법 개정안에 제동을 걸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개정안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정부 움직임에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했다.

경제정책은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실험실의 청개구리’가 아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글로벌 경영환경이 시계제로 상태에 있고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수출산업이 주춤하는 등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는 해법은 ‘기업 옥죄기’가 아닌 ‘기업 기(氣) 살리기’다.


김민구 기자 gentlemin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