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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제한적 주주권 행사’에 한시름 놓은 한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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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제한적 주주권 행사’에 한시름 놓은 한진그룹

‘연금 사회주의’ 논란 속 기금위 한진칼 ‘정관변경’ 결정
사실상 ‘절충안’ 제시…KCGI, 지배구조 개선 공세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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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민철 기자]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대한 ‘제한적 경영참여’를 결정함에 따라 한진그룹이 한시름을 놓게 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1일 회의를 열고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한진칼에 최소한의 범위에서 주주권을 행사키로 했고, 대한항공에는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기금위는 구체적으로 한진칼에 이사 해임 등 적극적 경영참여 대신 정관변경을 요구하기로 했다.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 결원으로 본다’는 내용으로 정관변경을 추진키로 했다. 또 국민연금은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한진칼을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해 수탁자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사실상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오너일가에 대한 직접적인 이사 해임 및 선임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금위는 이사해임, 사외이사선임, 정관변경,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등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적극적인 주주권을 결정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제한적 경영참여지만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한 이후 첫 사례다. 그러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주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연금 사회주의’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재계간 국민연금의 절충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연금은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강조한 바 있다. 이에 국민연금의 조 회장 이사 해임에 행동에 나설 것으로 관측됐었다.

문 대통령의 언급에 재계 안팎에서는 기업의 경영자율성을 침해하는 ‘연금 사회주의’라며 강력히 반발해 왔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의 언급 당일(23일) 국민연금 기금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가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반대를 표명하면서 논란을 확산됐다.

문 대통령의 주문과 재계 등의 강력 반발, 국민연금 내부 진통 등 논란이 격화됨에 따른 부담에 국민연금이 절충안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국민연금이 이사 해임 등 이외의 정관변경으로 주주권 행사를 결정함에 따라 한진그룹을 한숨을 돌리게 됐다. 당장 조 회장 등 오너일가를 겨냥해 지배구조 개선과 호텔사업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인 KCGI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의 지분 7.34%를 보유한 3대 주주이며, 대한항공 2대 주주(지분 11.56%)다.

당초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검토를 시사하면서 KCGI와의 연대 가능성도 점쳐진 바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연대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문 대통령의 주주권 행사 주문 등 한진의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공통분모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한진칼 10.71% 지분을 보유한 KCGI는 2대 주주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지분을 합치더라도 조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자 지분(29.93%)에 10% 이상 차이가 난다. 최근 KCGI가 소액주주 대상으로 결집에 나서고는 있지만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도움 없이는 한진측과 대결은 쉽지 않은 구도다.

이사, 감사 선임은 주총 의결 사항으로 출석 주주의 과반 이상 찬성과 4분의 1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제한적 주주행사에 나서기로 하면서 KCGI 지배구조 개선 요구는 현실화되기는 어렵다.

한진그룹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한진칼의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국민연금에서 정관변경을 요구해 올 경우 법 절차에 따라 이사회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게 되면 민간 기업에 최초로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는 첫 사례가 된다”며 “이번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결정이 선례로 작용하여 경제계 전체로 확산되면 기업 활동을 더욱 위축시켜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민철 기자 minc07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