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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는 유럽축구] 엘클라시코 (El Clasico) 말 뜻과 유래… 스페인국왕컵 속 숨은 전쟁 호날두 vs 메시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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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는 유럽축구] 엘클라시코 (El Clasico) 말 뜻과 유래… 스페인국왕컵 속 숨은 전쟁 호날두 vs 메시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이야기

[알고보는 유럽축구] 엘클라시코 (El Clasico) 말 뜻과 유래… 스페인국왕컵   호날두 vs 메시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이야기 이미지 확대보기
[알고보는 유럽축구] 엘클라시코 (El Clasico) 말 뜻과 유래… 스페인국왕컵 호날두 vs 메시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이야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기자] 레알 마드리드가 홈팬들 앞에서 엘클라시코 0-3 패배를 당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한국시간 28일 오전 5시 스페인 마드리드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2018~2019 스페인 국왕컵 4강 2차전에서 FC바르셀로나에 0-3으로 패했다.
이날 패배로 레알 마드리드는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엘 클라시코’에서 당한 완패라는 점에서 충격이 실로 크다.

레알 마드리드가 홈에서 열린 엘클라시코에서 0-3으로 패배한 것은 2경기 연속이다.

엘 클라시코 (El Clasico)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더비 경기를 이르는 말이다.

엘 클라시코의 첫 경기는 1902년 5월 13일 코파 델 레이의 전신인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 준결승전에서의 대결이다.

'전통의 승부'라는 뜻으이다.
엘 클라시코는 스페인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축구 경기 중 하나이다.

엘 클라시코가 유명해진 것은 스페인의 역사에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갖고 있는 배경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역사에서 오랜 권력의 상징인 카스티야주의 중심 도시이자 스페인 중앙정부의 수도이다.

반면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의 분리독립을 외치는 카탈루냐주의 중심도시다.

그 이유로 두 구단의 대결은 단순 축구 경기가 아닌 지역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뛸때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는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는 1902년 FC마드리드라는 이름의 축구클럽으로 탄생되었다.

1920년 당시 스페인 국왕인 알폰소 13세로부터 'REAL'(레알)이라는 명칭을 팀 이름에 쓸 수 있는 권리를 허락받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이름은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수용 인원 81, 254명)'이다.

이 이름은 은 레알 마드리드 팀이 챔피언스리그 원년부터 파죽의 5연패를 하는 등 최전성기를 달릴 때 이 구단을 맡았던 당시 구단주 이름이다. 이 구장은 왕과 공주를 비롯한 수상 등 귀빈들이 앉는 VIP석이 별도로 마련돼 있고 첨단의 라커룸 등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FC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1899년 창단된 스페인의 명문 프로축구 구단이다.

세계 최초로 시민 협동조합 형태를 갖춘 축구클럽이다. 연고지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이며, 줄여서 ‘바르사’라고도 부른다. FC 바르셀로나는 9만 8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홈구장 ‘캄 노우(수용 인원 98, 772명)’를 가지고 있으며, 응원가는 ‘칸트 델 바르사’이다.

카탈루냐(Catalonia) 어떤 곳?

카탈루냐는 스페인 동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본래 독자적 언어와 문화를 지닌 독립 국가였으나 1714년 스페인에 강제 병합됐다. 카탈루냐인들은 이때부터 스페인 주류인 카스티야인들과 문화·역사·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분리·독립을 요구해 왔다. 그러다 1931년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이 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카탈루냐는 자치권을 회복했지만, 1936년 스페인 내전 이후 정권을 잡은 프랑코 총통으로 인해 다시 자치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1975년 프랑코 정권이 붕괴되면서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복원되기에 이른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 열망은 재점화됐다. 왜냐하면 카탈루냐 지역은 첨단 산업과 높은 농업 생산력 덕분에 스페인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할 만큼 스페인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간 지역내총생산(GRDP)의 9%(약 170억 유로)가량이 중앙정부를 통해 남부 안달루시아 등 지방정부를 돕는 데 사용되면서 불만이 커진 것이다. ( [※참고] 카탈루냐 분리·독립 운동 )

, 역사상 첫 엘 클라시코

엘 클라시코의 첫 경기는 1902년 5월 13일 코파 델 레이의 전신인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 준결승전에서의 대결이었고, 당시 FC바르셀로나가 3-1로 승리했다.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은 당시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의 대관식을 기념해 열린 경기로, 그해 창단한 마드리드FC(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명칭)의 회장 파드로스의 건의로 열렸다.

이후 마드리드FC가 1920년 국왕 알폰소 13세로부터 ‘레알(Real)’ 칭호를 받아 ‘레알 마드리드’로 개칭되자 양팀의 경쟁은 지역 간, 계급 간 대결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을 계기로 양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게 되었다. 특히 1943년 코파 델 레이 준결승 2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11-1로 바르셀로나를 꺾으면서 역대 최다골차 승리를 거뒀는데, 당시 이 경기는 프랑코 군부 세력의 위협으로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제대로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두 팀의 적대감이 본격화된 계기가 됐다.


김대호 기자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