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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과학칼럼] 벚꽃의 불편한 진실, 사쿠라에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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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과학칼럼] 벚꽃의 불편한 진실, 사쿠라에는 죄가 없다

김형근 편집위원
김형근 편집위원
해마다 지금쯤이면 우리는 늘 불편한 진실을 맞이해야 한다. 바로 '사꾸라'로 지칭하는 벚꽃이다. 꽃에 무슨 죄가 있는가? 그러나 그 꽃은 늘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왔다. 일본의 국화(國花)라는 이유 때문이다.

봄을 만끽하는 벚꽃의 향연 속의 늘 개운치 않은 구석이다. 다시 말해서 벚꽃은 우리나라를 강탈한 이웃 일본이라는 이유다. 바로 벚꽃의 불편한 진실이다.
사실 일본 문화와 역사 속에서 벚꽃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문학과 예술에서 벚꽃은 일본의 무사인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1924~1929년까지 일본 도호쿠(東北)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 독일의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Eugen Herrigel)은 그의 저서 '궁술(弓術) 속의 선(禪)(Zen in the Art of Archery)'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벚꽃 잎들이 아침햇살을 머금고 대지 위에 사뿐히 떨어지듯이 두려움이 없는 자들은 소리 없이 내면에서 아무런 동요도 없이 존재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다."

궁술, 선과 도교(道敎), 그리고 사무라이에 대해 느낀 것을 알기 쉽게 간단히 서술한 책으로 유럽 여러 지역에 일본의 선과 도교를 알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이 책은 2009년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선정한 '세계 100대 글로벌 사상가'가 추천한 142권 가운데 하나이기도하다.

봄의 여왕으로는 그 농염(濃艶)한 자태를 자랑하는 장미를 꼽는다. 또 다른 봄의 여왕이 있다. 꽃비 하르르 흩날리는 벚꽃이다. 장미가 고운 맵시를 감추는 듯 말 듯한 요염한 포즈를 취하는 여왕이라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은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과감하게 내보이는 여왕이다.

어쨌든 벚꽃은 일본인의 정서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꽃구경을 간다는 일본말 하나미(花見)의 전통은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부터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서 일본세기(日本世紀)에는 하나미 전통이 이미 3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쓰여있다.

그 후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를 거치면서 이러한 전통은 더욱 굳어졌고 에도시대(江戶時代 1503~1867)에는 사무라이 꽃으로 발전하면서 대중적인 꽃으로 변했다. 벚꽃을 의미하는 사쿠라(櫻)는 곧 일반 꽃을 의미할 정도로 자리매김했다. 일본은 일제 강점기 동안 한반도 곳곳에 벚나무를 심었다. 진해의 벚꽃도 일제시대에 도시 미관을 위해 심은 것이 시초다.
벚꽃에 대한 혐오감은 비단 사무라이뿐만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일제시대의 시인들은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화려하게 피었다가 사라지는 벚꽃처럼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미사여구를 사용하며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자살 비행부대인 카미가제(神風)에는 산에서 피는 사쿠라라는 뜻의 야마사쿠라(山櫻) 부대도 있을 정도였다. 또한 일본 육군에는 침략주의자들로 구성된 모임이 있었는데, 이름이 사쿠라카이(櫻會)였다.

이 때문에 광복 이후 일본의 나라 꽃이라는 이유로 일부 주민들이 벚나무를 베어 버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2년 식물학자인 박만규와 부종휴 박사에 의해 진해에 있는 벚꽃은 제주도가 원산지인 왕벚나무로 밝혀지면서 되레 벚나무 살리기 운동에 들어갔다. 현재 진해에는 가로수, 공원, 강가를 막론하고 약 34만7000그루의 왕벚나무가 자라고 있다.

벚꽃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로든 우리와 함께 해온 꽃이다.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불편함을 던져버리고 사쿠라가 아니라 벚꽃과 함께 신선한 봄 내음을 맡으며 싱그러움을 만끽해 보자. 죄가 있다면 우리 인간에게 있다. 화려하게 피는 아름다운 벚꽃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단연코 무죄다. 불편하게 대할 필요가 전혀 없다.


김형근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hgkim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