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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경찰 깡패 동원 고려대 학생 3000명 폭행, 을지로 국립의료원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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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경찰 깡패 동원 고려대 학생 3000명 폭행, 을지로 국립의료원 참극

4.19혁명의 진원지, 고려대 학생들이 고려대 중앙광장을 출발해 국립 4.19 민주묘지까지 왕복 달리기를 하고 있다. 4.19혁명은 고려대 학생 3000명을 피습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이미지 확대보기
4.19혁명의 진원지, 고려대 학생들이 고려대 중앙광장을 출발해 국립 4.19 민주묘지까지 왕복 달리기를 하고 있다. 4.19혁명은 고려대 학생 3000명을 피습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419혁명의 도화선으로 고려대 학생 3000명 피습사건이 지목되고 있다.

1960년 3월 15일의 부정선거를 계기로 마산을 시발점으로 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학생 데모에 호응, 서울에서는 4월 18일 고려대 학생 3000여 명이 구속학생의 석방과 학원의 자유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시가를 행진햇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데모를 벌이다가 고려대학교 유진오(兪鎭午) 총장의 만류로 오후 4시쯤 데모를 중단하고 귀교하던 도중 종로 4가 천일백화점에서 대한반공청년단 소속의 폭력배들에게 피습을 당하면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4·19 혁명(四一九革命) 또는 4월 혁명(四月革命)은 1960년 4월 19일 대한민국에서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을 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이다.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3·15 마산 의거에 참여한 마산상업고등학교 입학생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이 부산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격화되었다.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전국민적 저항과 군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에 봉착한 대통령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몰락했고, 이 혁명의 결과로 과도 정부를 거쳐 6월 15일(6·15 개헌)에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4·19 민주혁명 혹은 4·19 학생운동, 4·19 의거, 4월 의거, 4월 혁명, 미완의 혁명 등으로도 일컫는다.

5·16 군사쿠테다 이후 군사정권에서는 419 의거'(義擧)로 불리다가 문민정부부터 다시 혁명으로 승격되었다.

1960년 1월 말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선거운동 도중 신병 말기라는 판정을 받게돼 하와이 병원으로 입원했으나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해 이승만이 단독 후보가 되었다.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인 장면은 건재하였고, 이 소식을 듣고 이승만은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어느 선거보다도 부정선거활동에 열을 올렸다. 정부로 하여금 공무원을 통한 선거운동망을 조직하고, 전국 경찰에 지시하여 이를 감시독찰하도록 하는 등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2월 28일 대구에서 고등학생들이 “학원의 자유 보장하라”, “독재정치, 부정부패를 물리치자”는 구호를 앞세우며 대구 도심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를 2·28 대구 학생의거라고 부르며, 이는 전국의 다른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3월 15일 자유당의 대대적인 3·15 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되어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대한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내무부장관 최인규는 무자비하게 강경진압함으로써 마산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이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결국 3월 18일 내무부장관 최인규와 치안국장 이가학이 마산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고, 내무부장관이 홍진기로 교체·임명되는 등 정국을 수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4월 18일의 서울의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정오에 총궐기 선언문을 발표한 후, 세종로~태평로 일대로 진출해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유진오 고려대학교 총장 등의 만류로 오후 4시쯤 데모를 중단하고 평화행진을 하면서 귀교하는 도중 신도환의 대한반공청년단 종로구 단장 임화수 등 폭력배들로부터 취재한 기자들 일부와 함께 학생들이 피습된 4·18 고려대학생 피습 사건이 일어났다.


김재희 기자 tiger8280@g-enews.com